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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역사

🥐 빵 몇 개 때문에 전쟁이 났다?! 멕시코를 뒤흔든 황당한 '생과자 전쟁' 비하인드

by mexicoroad 2026. 7. 11.

1. 빵집을 털어간 군인들, 그리고 60만 페소 청구서의 진실 🧾

1830년대 당시, 멕시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끊임없는 쿠데타와 폭동으로 극도의 혼란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대낮에도 약탈이 흔하게 일어날 정도였죠.

 

이 혼란 속에서 멕시코시티 근처의 작은 마을 타쿠바야(Tacubaya)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프랑스인 요리사, 무슈 레몽텔(Monsieur Remontel)은 황당한 일을 당합니다. 지난 1828년 발생한 폭동 당시, 멕시코 장교와 군인들이 그의 가게에 들이닥쳐 난장판을 만들고는 돈도 내지 않은 채 빵과 과자를 전부 먹어 치워 버린 것입니다.

 

레몽텔은 수년에 걸쳐 멕시코 정부에 배상금을 요구했지만 당연하게도 번번이 무시당했습니다. 결국 억울함을 참지 못한 그는 고국인 프랑스 정부에 간절한 진정서를 보냈고,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는 이를 빌미로 멕시코 정부에 무려 60만 페소라는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됩니다.

과연 빵값이 60만 페소나 되었을까요? 사실 프랑스 정부가 요구한 이 거액은 레몽텔의 순수한 빵값(당시 가치로 약 1,000페소 미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멕시코 내전 과정에서 강탈이나 피해를 입은 모든 프랑스 교민들의 누적 피해 보상금과, 멕시코 정부가 프랑스에 지고 있던 외채까지 전부 뭉뚱그려 합산한 금액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멕시코 일반 노동자의 수천 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이 황당한 거액을 멕시코 정부는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빵값 논쟁'은 결국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공하는 세계사상 가장 황당한 전쟁 중 하나인 '빵 전쟁(The Pastry War)'으로 번지게 됩니다.

2. 프랑스 국왕의 빌드업, "내 국민의 과자 값을 내놓아라!"

당시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 1세와 프랑스 정부는 남미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멕시코로부터 밀린 빚을 받아낼 확실한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접수된 빵집 주인의 편지는 프랑스에게 아주 좋은 '구실'이 되었습니다.

 

멕시코가 60만 페소 지급을 거부하자, 프랑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1838년 정식 함대를 파견해 멕시코의 가장 중요한 무역항인 베라크루스 항구를 봉쇄했습니다.

 

단순한 채권 회수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후대 사람들에게 '생과자 전쟁(Pastry War)'이라는 황당하고도 기발한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3. 다리를 잃고 영웅이 된 독재자, 그리고 기괴한 장례식 🦿

이 전쟁은 멕시코 역사상 최고의 문제 인물이자 독재자인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장군을 부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당시 그는 텍사스 독립 전쟁(알라모 전투 등)에서 패배한 실책으로 권력을 잃고 고향에 은거 중이었으나, 프랑스군이 쳐들어오자 명예 회복을 위해 전선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베라크루스에서 프랑스군 퇴각 작전을 지휘하던 중, 프랑스 군함이 쏜 포탄에 맞아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중상을 입게 됩니다. 비록 전쟁은 영국의 중재로 멕시코가 프랑스에 60만 페소를 지불하기로 합의하며 허무하게 끝났지만, 산타 안나는 조국을 위해 싸우다 다리를 바친 '외다리 영웅'으로 이미지 세탁에 완벽히 성공합니다.

 

이 부상을 발판 삼아 다시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된 그는, 전쟁 직후가 아니라 몇 년 뒤인 1842년, 자신의 잘린 다리를 수도 멕시코시티로 엄수해 오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는 다리를 위한 성대한 '국가 장례식'을 치르고 화려한 기념비에 안장하는 기괴한 행사를 벌였습니다.

역사의 씁쓸한 비하인드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인 1844년, 산타 안나의 독재에 분노한 멕시코 군중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군중들은 그가 그렇게 애지중지 묻었던 다리 무덤을 파헤쳐, 잘린 다리를 길거리에 매달고 끌고 다니며 모욕했습니다.

 

빵집 주인의 털린 과자 가게 진정서에서 시작해, 강대국의 얍삽한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와 독재자의 기상천외한 다리 장례식으로 이어진 이 '생과자 전쟁'은 오늘날에도 세계 외교사에서 가장 황당하면서도 씁쓸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